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내전 (문단 편집) == 발단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50px-Russian_civil_war_in_the_west.svg.png|width=600]] [youtube(ESnj17NwJTU)] 러시아 내전(적백내전)의 초기 배경. [[1917년]] [[10월 혁명]] 이후 군대의 상당수는 [[볼셰비키]]의 휘하에 들어갔지만 군대에 남아 있는 병사보단 집에 간 병사가 훨씬 많았다. 볼셰비키 정권이 [[지주]]의 [[토지개혁|토지를 분배]]하고 있었으므로 농민 출신의 병사들은 집에 가야만 자기 몫의 토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촌을 장악하러 간 공산당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혁명 시점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중심 도시들만 장악했을 뿐이었고 지방엔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정치 세력들이 상당했다.[* 1917년 11월 [[두마#s-2]] 선거에선 사회주의 계열의 '''[[사회혁명당(러시아)|사회혁명당]]([[나로드니키]])이 농촌 지대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40%의 지지율로 제1당이 되었다.''' 볼셰비키는 주요 도시 공업 지대에서 승리하면서 24%의 지지율로 제2당이 되었다.] 때문에 위협을 느낀 볼셰비키 정권이 제헌의회를 해산하자 반볼셰비키 진영과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의 반란을 기점으로 러시아 전역에서 반란이 터졌다. 그 결과 각 세력은 자신들의 지역정권을 수립해 군웅할거에 들어갔다. 여기에 [[폴란드]], [[카자크]], 각 지역 [[부농]]들의 사병이나 타타르인과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등 종교적 봉기와 발트, 캅카스 지역의 민족주의 봉기 세력까지 겹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직들이 적군에 대항했다. 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이전에는 [[독일 제국군|독일군]]이 이들을 계속적으로 지원했다. 게다가 협상국 역시 종전을 전후하여 볼셰비키 정권을 무너뜨리고 다시 독일군과 계속 싸우는 정권을 세울 목적으로 반볼셰비키 세력을 지원하면서 전쟁은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